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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事문학/저녁노을 바라보며(99)

    출처:    편집 :编辑部    발표:2018/12/19 13:38:08

    나는 TV드라마를 보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이유는 교묘히 삼각관계를 만들어 가정불화, 사회갈등, 부조리, 불륜 등등으로 정서를 함양시키기는커녕 오리려 거치러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렇게 쓰지 않으면 시청률이 떨어져 중간에 종연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작가들도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나는 요즘『전원일기』재방영을 보느라 저녁시간을 즐긴다. 공해 없는 자연마을 양촌리가 무대다. 사람들도 얄팍한 도회지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자연인들이 모여 산다.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훈훈한 농촌의 인정이 그리워지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겨 참 좋다. 

    뼈대 있는 양반가문 김회장(최불암 역)댁과 저자거리 서민풍의 복길할머니(김수미 역)댁은 대조적이다.

    김회장은 노모와 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두 손자 4대로 이어지는 대가족을 부인(김혜자 역)과 함께 가정을 평화롭게 꾸려간다.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자손들에게 극진한 자애로 집안이 훈훈하다. 자손들이 부모를 보고 배워 행실이 모범적이다. 하여 김회장은 양촌리 정신적 지주다.

    반면 복길할머니는 외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로 이룬 소가족이 소박하게 살아가며 동네 갖가지 사건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끼어드는 약방의 감초다. 때론 주책이다 싶은데도 경우가 바른 중연할머니다. 복잡하게 꼬인 사안을 촌철살인으로 시원스레 풀어준다. 복길할머니가 없으면 전원일기가 앙코없는 찐빵이다. 

    독특한 배역들의 명연기가 자연스럽다. 나도 농촌가정에서 4대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난 1973년부터 지금까지 근반세기를 콘크리트 숲속에서 살았다. 삭막하고 살벌한 분위기에서 정서가 메말랐다.

    전원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 감상에 젖어든다. 마치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려 풀잎이 솟아오르고 꽃이 피듯 눈가에 미소를 머금기도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동네 청년들이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뙤약볕에서 품앗이를 한다. 때론 종자 값도 노동 값도 되지 않아 농작물을 갈아엎으면서도 도시로 떠나지 않고 농촌을 지킨다. 물밀듯이 수입되는 농산물에 대항코자 과학영농을 위해 고민들을 한다. 농토를 눈물겹게 지키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가난과 일에 찌든 아낙네들이 부녀회를 조직해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챙기며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친다. 도회의 여성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애들이 크는데 낙을 삼고 가정을 지킨다. 이들이 있기에 이 나라가 쓰러지지 않고 존속한다.

    전원일기는 MBC에서 1980년 10월 21일에 시작하여 22년간 1088회를 방영한 안방극장의 고전이 됐다. 아픈 역사가, 자랑스러운 전통이, 그리고 미풍약속이 녹아있다.

    어쩌면 극작가가 시나리오를 그렇게도 잘 썼을까! 특히 극중 대화는 멀리서 고상한 말을 골라 조어造語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잘 골라 대화가 물흘으듯 자연스럽다. 이를 두고 언어의 조련사라 하는가! 출연진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연출가 이연헌의 재능이 띄어났으리라.

    부모에 대한 효성과 나라에 대한 충성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났겠는가? 나라가 없으면 이 땅에서 우리말을 쓰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충효는 동서양의 고전에 다 기록되어 윤리를 넘어 사상이고 철학이고 도리이다. 고전은 부정할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고 영원이 존재하는 진리이다.

    전원일기를 보면서 불효를 스스로 질책하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저질은 과오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