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뉴스

    ‘양치기 소년’ 돼 가는 미국 대학 경보시스템 [특파원 리포트]

    출처:news.kbs.co.kr    편집 :编辑部    발표:2025/12/16 10:39:54

    ■브라운대 총격 직후 경보 발령했지만…"익숙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 현지 시각 지난 13일 토요일 오후, 미 동부 명문대 중 하나인 브라운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습니다. 총격 직후 대학 측은 학내 경보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대피하고, 문을 잠그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두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달됩니다. 브라운대 대학원생 잭 디프리미오도 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학교와 대학에 다니면서 너무 많은 봉쇄(락다운)를 겪어봐서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어요(I had been through so many lockdowns in school and in undergrad that I wasn’t that worried).” 이 학생은 부상자 수 집계 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경보 피로(Alarm fatigue) 현상입니다. 경보가 너무 많이 울려 진짜 위험 경보에 둔감해지는 걸 말합니다.

    ■2007년 버지니아텍 참사 이후 미국 대학에 '즉시 경보 시스템' 의무 도입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격으로 꼽힙니다. 당시 총격범 조승희가 처음 두 명의 학생에게 총격을 가하고, 두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학은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당국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대학의 비상 대응 체계는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연방정부가 ‘클러리법(Clery Act)’ 등의 개정에 나선 겁니다. 클러리법의 정식 이름은 ‘잔 클러리 캠퍼스 보안 정책 및 범죄 통계 공개에 관한 법(Jeanne Clery Disclosure of Campus Security Policy and Campus Crime Statistics Act)’입니다. 1986년 리하이대 기숙사에서 성폭행·살해된 여대생 잔 클러리 사건을 계기로 1990년 제정된 연방법으로, 연방 지원금을 받는 모든 대학은 캠퍼스의 범죄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버지니아텍 참사는 이 법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대학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실시간으로 비상 상황을 알리는 ‘즉시 경보 시스템(Emergency Notification System)’을 갖추게 됐습니다.

    ■너무 잦은 테스트 경보…"진짜인지 훈련인지 모르겠다" 불만

    그러나 지금 미국 대학들에서는 경보가 지나치게 자주 울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캠퍼스 근처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화재나 가스 누출이 있을 때, 혹은 경찰이 학교 주변에서 용의자를 추적할 때도 경보가 울립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테스트 경보’ 역시 자주 울립니다. 미시간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시스템 점검 경보를 발송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주립대 등은 분기마다 전면적인 ‘비상 대응 훈련용 경보’를 발송합니다. 일부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너무 자주 울려서 이제는 진짜인지 훈련인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경보 남용, 경보 신뢰 훼손할 수 있어 주의 필요"

    지난 주말, 브라운대 총격 사고는 학생들이 학교에 많이 모여 있는 시험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경보가 발령된 덕분에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단 평가도 있습니다. 그만큼 빈번한 경보 발령이 오히려 구성원들의 경보 피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주의가 필요합니다. 너무 잦은 테스트와 경보 남용이 경보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안전장치로 작동해야 할 경보가 양치기 소년의 외침이 될 경우,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